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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섬 ★★★☆☆(10월)
    서평 2019. 10. 29. 19:53

    읽은 책 : 장 그르니에, 『섬』, 민음사

    다 읽은 날짜 : 2019년 10월 25일

     

    < 읽게 된 동기 >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나온 책.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 ‘섬에 부쳐서’ 때문에.

    (생략) 나는 아직도 그 독자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될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14p

     

    < 한줄평 및 별점 > ★★  ☆☆ ( 3점/ 5점 )

    옛사람의 소소한 이야기. 시대는 흐르지만 생각은 비슷하다.

     

    <서평>

    집에서 전에 다니던 회사까지 지하철을 타면 1시간이 걸렸다. 만원 지하철에 책을 들고 읽을 수가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듣는 것이었다. 저작권 때문에 책을 모두 읽어주지는 못하지만, 책 소개를 듣고 지하철에서 내릴 때면 그 책을 다 읽은 기분이었다. 그때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를 듣고서 이 책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는 스승인 ‘장 그르니에’에 대한 아부성 멘트가 아니었을까.

    ‘섬’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이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에 대한 추억, 낯선 도시로의 여행기 등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쉽게 놓치는 일상의 것들을 예민한 감각으로 잡아내서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다만, 쉽게 읽히지는 않아서 건강에 좋은 음식처럼 꼭꼭 씹어 먹어야 제맛을 내는 책이다.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 물루’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나는 ‘행운의 섬’ 첫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 대만으로 자유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더 내 마음에 꽂혔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95p

    마음 편하게 도착해서 중요 관광지만 빠르게 보는 패키지 여행에 익숙한 나로서는 자유여행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대만에 도착해서 이때까지 일상에서 써본 적 없던 영어를 쓰고 구글 맵으로 길을 찾고 우버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 오는 날은 갑자기 일정을 바꾸는가 하면 예정에 없던 만남에서 현지인의 맛집을 찾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고서도 타이페이라는 도시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여행을 하고서 새로운 곳에 가서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1년간 고전 문학을 굉장히 많이 읽었다. 왜 그렇게 많이 읽었는가 생각해봤더니 그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에서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흥미를 느끼고 말을 건넨다.

    나가사와라는 사내는 알면 알수록 기묘한 남자였다. 나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은 아직 만난 적이 없다. 그는 나 따위는 따라잡지도 못할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은 지 삼십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밖에는 믿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문학을 믿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인생은 짧아.”

    쓰여진 지 30년이 훨씬 넘은 ‘섬’이라는 책을 읽고서 고전이라고 해도 현대보다 더 우월하거나 깊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나 21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나 훌쩍 떠나는 여행을 바라고 고양이!를 좋아하니 말이다. 이제 지적 허영심을 버리고 현대 문학(혹은 최근 쓰여진 책)에서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보며 더 열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은 현재 이 땅에 발을 내디디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인상 깊은 문구 >

    • [공의 매혹]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 빛이 찾아들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득 수의를 밀어붙이며 나사로처럼 일어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란다. 그런데 사실은 그 수의란 다름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바로 그러했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여러 해에 걸친 시간 속에 흩어진 꿈처럼 어렴풋한 기억이다. 나에게 새삼스럽게 이 세계의 헛됨을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보다 더한 것을, 세계의 비어 있음을 체험했으니 말이다. 26p
    • [고양이 물루] (고양이를 보며) 조금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 섹에 흠뻑 몰두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보면 그는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 접시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그의 눈에 가득 찬 욕망은 치열하다못해 벌써 음식 위로 튀어올라가 앉은 것만 같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옹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옹크린다. 행동에 빈틈이라곤 찾아볼 도리가 없다. 그의 행위는 몸놀림과 일치하고 몸놀림은 식욕과, 식욕은 그의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야말로 끝없는 연쇄 조직처럼 일사불란하다.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꼭 반쯤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로운 윤곽에도 이토록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44p
    • (고양이가 집을 나간 후) 이렇게 종적을 감춘 고양이는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배를 연상시킨다. 우리들의 배의 난파 쪽에 더 그럴싸한 시적 후광을 곁들여 상상하게 되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에게 생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루가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범우주적으로 삶에다가 그네들의 향기를 깃들이게 하는 저 유랑하는 고양이들의 종족을 생각하곤 했다. 56p
    • (고양이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서) 이처럼 부질없는 문제에 대하여 박학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에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61p
    • [케르겔렌 군도]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 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인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 것 중에서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77p
    • 이태리의 어느 오래된 도시 교외에 살고 있을 적에 나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포석이 고르지 못하며 매우 높은 두 개의 담장 사이에 꼭 끼여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곤 했다(<시골 바닥에> 그처럼 높은 담장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는 사월이나 오월쯤이었다. 내가 그 골목의 직각으로 꺾이는 지점에 이를 때면 강렬한 재스민과 리라꽃 냄새가 내 머리 위로 밀어닥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꽃 내음을 맡기 위하여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고 나의 밤은 향기로 물들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그 꽃들을 아깝다는 듯 담장 속에 숨겨두는 그 사람들의 심정을 나는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나의 정열은 그 주위에 굳건한 요새의 성벽들을 쌓아두고자 한다. 그때 나는 하나하나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밀을 예찬했다. 비밀이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것을. 84p
    • [행운의 섬들]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 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95p
    • [부활의 섬] 그는 나에게, <공부를 많이 한> 나에게 어린아이처럼 내세에 대한 질문을 했던 날은 그래도 내 고통이 덜했다. 그때의 그는 벌써 가장 어려운 고비를 지나버린 모양인지 죽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죽은 후의 일로 마음을 쓰고 있었다. 아마 절망 때문인 듯했지만 그는 마침내 질문을 하면서 조건에 대한 흥정을 하는 참이었다. 나는 비겁하게도 몇 가지 희망적인 말로 대답을 하긴 했지만 내 이야기가 그다지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119p
    • [상상의 인도] 어느 흰교도의 말: 중요한 것은 우주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 꿈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그저 꿈에서 깨어날 뿐이다.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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